당신의 섹스 파트너는 몇 명인가요? 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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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<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>
 
얼마 전 한 여성지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. <섹스 칼럼니스트를 만나다>라는 제목의 기사를 위한 인터뷰였는데, 해외 여성지의 ‘여성 섹스 칼럼니스트 4인 방’ 인터뷰 기사를 벤치마킹하려던 담당 기자의 가열찬 기획 의도와는 달리 결국 남자 2명, 여자 2명이 그 자리에 나왔다.
 
사진 촬영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여자들은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한다. 급히 투입된 남자 둘은 섹스 칼럼을 쓰는 남성지 기자 한 명, 그리고 자칭 ‘픽업 아티스트’라면서 온오프라인 상에서 작업 노하우를 가르치는 사람이었다. 그 중 한 명은 끝내 가면을 쓰고 사진 촬영을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, (내 예상이지만) '섹스 칼럼을 쓰는 핫한 여성들'을 소개하고자 했던 당초 계획이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만 했다.
 
한국 사회는 아직 그렇다. 그 수위야 어찌 됐든 섹스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은 창피하고 부담스럽다. 특히 글 쓰는 사람이 여자면 앞으로 연애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수 있고, 본의 아니게 가족이나 주위 사람이 불편한 시선을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. ‘섹스 얘기 좀 하는 게 뭐 어때서?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당당하지 못한가?’ 라고 잘난 척해 봤자 결국 피 보는 건 당사자뿐이라는 걸 알기에… 아직 한국은 그런 사회라는 걸 알기에, 나는 섣불리 얼굴이나 실명을 공개하지 못하는 그분들을 못마땅해 할 수 없다.
 
하루 종일 애 보느라 힘들었던 나는 늦은 시간에 시작된 사진 촬영으로 심신이 지쳐 있었던지라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이야기를 하며 대강 인터뷰를 마쳤는데, 그 중 한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가시처럼 맴돌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.
 
아직까지 섹스 파트너가 몇 명이었는지를 묻는,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질문이었다. 순간 치기가 발동해 “아주 많아요. 셀 수 없을 만큼”이라고 대답했다. “세어보지 않았어요.”또는 “다섯 명쯤 돼요.”라는 시시한 대답으로 지면을 채우게 될까 봐 걱정이었을 기자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되물었다. “저 남자분은 300명 정도 된다던데, 연희 씨는 한 100명 정도?”
 
사실 난 섹스 해 본 남자의 수를 헤아려 본 적은 없다. 언젠가 한번 세보려고 했다가 그걸 섹스라고 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애매한 경우가 하도 많아서 도중에 포기했다. “한 20명 정도로 해 두죠” 라고 대강 대답했는데, 집에 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냥 ‘100명도 넘게 자봤다고 할 걸 그랬나’싶다. 섹스에 관해서, 남자에 관해서 왈가왈부하려면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폼도 나고 명분도 서지 않겠는가?
 
20명이 됐든, 100명이 됐든 많은 수의 남자와 섹스를 했던 것에 대해서 후회해 본 적은 없느냐고 기자가 물었다. “후회할 리가. 할 수 있을 때 많이 해 봐야 남자 보는 안목도 생기는 것 아니겠냐” 라는 듣기 좋은 말을 했지만,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라면 내 안에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개의 자아가 대립하고 있다.
 
‘좀 더 많은 파트너와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, 좀 더 많이 해 볼 걸. 20대를 바람처럼 살다가, 서른다섯 되는 해에 임자를 만나 영국으로 이사간 S모 양이 그랬듯, 나도 결혼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남자랑 섹스해 보고, 여자랑도 해보고, 섹스 파티도 해 보고… 이렇게도 저렇게도 다 해볼 걸. 내 안에 숨어있는 색 끼를 있는 대로 발산하고 누려가면서 원 없이 즐겨볼 걸…’ 하는 마음과 ‘결혼 전까지 순결을 고수할 걸. 그래서, 남자라곤 남편 하나밖에 모르는 여자가 될 걸. 어정쩡한 경험으로 평생 아쉬움을 묻고 살아야 한다면,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여자로 남아 이 세상에 한 사람만이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짝이라 믿고 체념하고 순응하며 그렇게 살아갈 걸…’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.
 
대한민국 여성들의 평균 섹스 파트너 수가 얼마인지 모르지만, 대부분 나처럼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경우가 많다고 볼 때 우리는 ‘일부일처제’ 문화에 순응해야 하는 결혼 제도에 편입한 후 일종의 부작용을 겪게 된다. ‘내가 문제인 걸까? 이 남자 문제인 걸까?” ‘나랑 좀 더 섹스 궁합이 잘 맞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?’ 라는 의구심과 미련을 계속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부작용 말이다.
1 Comments
자아지 2020.12.17 18:19  
으메 조아부러요~잉~